해커와 화가, 폴 그레이엄

얼마 전,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의 “해커와 화가” 라는 책을 읽었다. 책 제목만 봐서는 어느 내용일지 감이 안잡힐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신기하게도 이 책은 컴퓨터 관련 서적 이면서 인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있다. 심지어 이 책은 20년 전에 집필 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배울 점이 많았다. “명품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번 감탄 하고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어 나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인 폴 그레이엄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찾아보았다. 폴 그레이엄은 리스프(Lis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리스프를 활용해 Arc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게시판을 개발했다. 이 게시판이 바로 우리가 종종 보는 해커 뉴스(Hacker News) 이다.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는 과거 ViaWeb을 야후에 매각한 뒤 Y Combinator를 설립한 초대 사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해커 뉴스의 로고가 ‘Y’인 것이다. 폴이 Y Combinator에서 근무하던 당시, 레딧, 트위치, 히로쿠 등에 투자하며 이 회사는 성공적인 엑셀러레이터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14년, 그는 우리가 잘 아는 OpenAI의 CEO인 샘 올트먼(Sam Altman)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고 한다.

보통 ‘해커’라고 하면 컴퓨터를 이용해 남의 데이터를 탈취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해커의 의미는 컴퓨터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거나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에 더 가깝다. 한편으로는 창조자 같은 느낌을 주기에, 화가, 소설가 또는 건축가와 닮아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해커와 화가 인 것이다. 이 책에서 해커를 ‘공부벌레(bookworm)’ 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한다. 요즘 시대 말로 표현하자면 ‘괴짜’ 또는 ‘공대 너드남(?)’이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소프트웨어 = 건축물 = 예술작품’ 이라는 관점으로 아래 문장을 한번 읽어보자.
- “아름다운 소프트웨어인지 아닌지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외적인 방법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아름다운 것은 퍼지고 못난 것은 사라진다.”
-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말로 잘 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해킹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자기 자신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다. 해커가 위대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화가와 마찬가지로 감정이입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사물을 사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 읽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질문해보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모든 영역에서 본질이 되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본질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아마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을 마다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아쉽게도 그 방법은 부동산, 주식, 코인과 같은 투자 개념이 아니다. 폴은 비아웹을 야후에 매각한 창업자이기에, 창업자의 관점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설명한다. 이 또한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내용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본질을 잊고 타성에 젖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 “비즈니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자기가 쓰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 “회사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것에 불과하다.”
-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춘 환경에 있어야 한다. 두 가지란 바로 정당한 평가와 영향력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사람들의 능력을 공평하게 평가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이 일해서 더 많이 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영향력도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내린 결정이 뭔가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제나 최고의 동기부여는 얻는 것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 “무언가를 원한다면 스스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것을 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실제 세상에서 부는 아빠가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도둑이나 도박사 같은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부동산, 코인, 주식은 부자가 되는 방법에 속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관련해서 사기 건 수도 많이 늘어났고 피해자들도 생기고있다. 투자라고 읽지만 투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코인으로 부를 쌓은 신흥부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를 부의 재분배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의 재테크 활동은 결국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자의 관점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다룬다.
- “좋은 디자인은 간단하다. 간단하고 쉽게 보이도록 드러내기란 무수한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 “자기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따라 하기만 하는 것은 형편없는 디자인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기 아이디어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면, 모조품을 만드는 것이다.”
- “좋은 디자인은 어렵다.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그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지금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 “좋은 작품을 산출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이 일하는 동안에는 자기가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작품을 보고서 놀랍다고 생각을 하지만, 창조자는 오로지 결점만을 보게 된다. 이러한 패턴은 우연이 아니다. 근심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가”에 주목하기 바란다.
- “예술의 분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고객이 원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사람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게 되는 분야는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용이 약간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엄연히 프로그래머와 창업자의 관점에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책에는 IT 용어들이 다수 등장한다. 관련 배경지식이 없다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위 내용을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책이 출판된지 무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아마도 본질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본질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깜빡하고 있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그런 책이다.